삶/읽기

Stephen Hero, 스티븐 히어로 by James Joyce

therealisticidealist 2013. 4. 4.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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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es Joyce의 Stephen Hero는 Virginia Woolf의 Mrs Dalloway에 이어 내가 몇 번을 시도했지만 끝내 중간에 포기하고만 소설 중 하나이다. 두 작가 모두 '의식의 흐름'이라는 새로운 기법으로 유명하듯(이럴때 영문학과 출신임을 한 번 써먹어보고) 화자의 행동이나 말이 아닌 생각하는 그 흐름 전체를 따라가며 적어내는 방식이기 때문에 여간 난해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다. 나도 한 번 공상에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을 정도로 생각이 멀리까지 가버리기 때문에 그 의식의 흐름이라는 기법이 이해는 되지만 내 머릿속이 아닌 남의 머릿속에 있는 흐름까지 따라가기에 -그것도 영어로 따라가기에는- 너무 벅차다.




이 책은 내가 종종 들리던 Camden Market 지하에 있는 헌책방에서 £2에 산 것인데 단지 작가인 James Joyce의 이름만 믿고 샀다가 2 챕터 정도 읽고 먼지가 쌓이도록 묵혀두고 있던 책이다. 그러다가 어느날 또 습관처럼 덴마크 스트릿의 Foyles를 들렸다가 Classics(고전)를 세일하는 것을 보고 충동에 사로잡혀 몇가지 다른 책들과 함께 Joyce의 A Portrait of the Artists as a Young Man(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사들고 왔다. 내가 오래전부터 읽고 싶어하던 책이라 집에 가자마자 설레는 마음으로 introduction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그 곳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그 이름 Stephen Hero... 서론에서부터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모티브가 된 Stephen Hero 먼저 읽고와야 한다고 계속해서 말하고 있었기에 나는 또 그 책을 내려놓고 책장 모서리에 고이 잠자고 있던 Stephen Hero를 꺼내와야 했다. 

물론 또 끝내진 못했다. 하지만 반 정도만 읽었음에도 느낀 점이 많고 또 마음속 깊숙이 파고드는 글귀들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생각도 정리할 겸 소개하고 싶다. (그리고 얼른 젊은 예술가의 초상으로 넘어가기 위해서..)





가끔은 새하얗고 빳빳한 새 종이보다 이렇게 색이 바랜 텁텁한 느낌의 재생지로 만들어진 책이 더 좋을 때가 있다. 요즘 나오는 책들, 특히 한국 출판물들은 여백이 너무 많고 글자가 커서 이렇게 글자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책들보다 읽는 맛이 덜하다. 


주인공은 누구나 예상하듯 Stephen이라는 대학생이다. 하지만 자신의 학과 친구들과는 전혀 다른 사상과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며 Artistic한 면모를 짙게 가지고 있는 그는 수업시간에 교수가 하는 말들이나 자신의 동기들이 가지고 있는 태도에 반감을 가지고 항상 의문을 제기한다. 그렇기에 자신과 말이 통하지않는 사람들과는 가까이 지낼 수 없는 성향을 지녔고 자신과 생각이 통하고 함께 논쟁할 수 있는 몇 몇 사람들과 가까이하며 본인의 사상을 형성해 나간다. 특히 이 시점에 영국에서의 독립을 모색하고 있는 모국인 아일랜드에 대한 반항과 적대심이 곳곳에 드러나고 무신론적인 경향도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이 책을 계속 읽고있다보면 Stephen이 Joyce 자신의 모습을 반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때때로 갖게 되는데 이 책과 젊은 예술가의 초상 서론에는 Joyce가 이 인물에 자신을 투영한 것이 아니라고 극구 부인했다는 내용이 두 권 모두에 담겨있다.

Stephen은 노르웨이의 극작가인 Henrik Ibsen을 존경하는 마음을 끊임없이 표현하는데 Ibsen의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는 나로써는 Stephen이 그렇게 찬양하는 Ibsen이 어떤 사람인지 그 작품들을 찾아서 읽어보고 싶을 정도다. 그렇다고 진짜 읽어보진 않았지만... 안봐도 그냥 더 어려울 것 같다.



거의 반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건지 이해를 하지 못하면서도 이 책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던 이유가 바로 Artist에 대한 Stephen의 애정과 그에 대한 매끄러운 해석과 정의 때문이었다 -여기에서 Artist는 그림이나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예술가라기 보다는 본인의 사상과 이론을 미학적이고도 학문적으로 풀어내는 능력을 가진 포괄적인 의미의 예술가를 뜻한다- 책 속에서 그의 친구들은 Stephen에게 Artist에 대해 우스갯소리로 물어보곤 하는데 그럴때마다 Stephen은 대부분은 그런 쓸데없는 질문과 조롱들을 무시하지만 가끔씩 그 누구보다도 명쾌하고 통쾌한 해석을 내려준다.

내가 정말 재미있게 본 장면이 있는데 바로 어떤 젊은이가 Stephen에게 '너 예술가 맞지? 근데 예술가라면서 왜 머리는 장발을 안해?'라고 묻는 장면이다. 더욱 재미있는건 Stephen이 이 질문에 대답을 하기보다는 이 젊은이의 아버지가 이 학생에게 어떤 학문적 직업을 가지도록 의도해 놨는지에 대해 짐시 궁금하게 여긴 후 다시 본인이 하던 일로 돌아간다는 점이다. 이 장면에서 잠깐 셜록 홈즈가 떠올랐다.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만 머릿속에 저장하고 하찮다고 여기는 것은 가차없이 지워버리는 그 기억력이 본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나 논쟁할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것에만 대답을 하는 Stephen의 모습과 살짝 겹친다. 



특히 여기에서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Artist 예술가'라는 존재에 대한 선입견이 잘 나타나는데 바로 '예술가니까 머리를 길러야하지 않느냐' 등의 편견이다. 예술가들이 대부분 비슷한 외모를 가지고 있는건 사실이다. 다듬어지지않은 헝클어진 머리, 주름 가득한 얼굴, 정돈되지 않은 옷차림... 점점 그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긴 하지만 '예술'이라는 단어자체 조차 어렵게 다가오는 우리나라에서는 그 편견이 더욱 심할 것이라 생각한다.



The artist, he imagined, standing in the position of mediator between the world of his experience and the world of his dreams - 'a mediator, consequently gifted with twin faculties, a selective faculty and a reproductive faculty'. To equate these faculties was the secret of artistic success: the artist who could disentangle the subtle soul of the image from its mesh of defining circumstances most exactly and 're-embody' it in artistic circumstances chosen as the most exact for it in its new office, he was the supreme artist.



내가 받아 적어놓고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렵지만 참 멋있는 말이다. 자신의 경험의 세계와 자신의 이상(꿈)의 세계 중간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는 예술가. 어떠한 이미지의 미묘한 영혼을 그 그물같은 정의의 환경으로부터 가장 정확하게 풀어낼 수 있고 또 그것을 가장 정확하다고 선택된 예술적인 환경으로 다시 구현해낼 수 있는 것이 바로 최고의 예술가이다

요약해서 의역한다면 대충 이런 뜻이 되겠다. 이 이후에 Stephen은 그 최고의 예술의 형태를 'Poetry,시'라고 명명한다. 

자신이 경험한 것을 자신이 상상하는 대로, 꿈꾸는 대로 정확하게 각기 다른 예술의 형태로 표현해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예술가들은 다 저걸 깨닫고 이룬 사람들일 테고 또 그 반열에 들기 위해서 수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나도 그 노력하는 사람들 중 한 명이라고 말하고 싶다..!



얼마전 뉴스에서 James Joyce가 집필하는 데만 17년을 쏟아부은 FInnegans Wake(피네간의 경야)가 중국에서 무려 8년이라는 기간의 번역을 거쳐 출판되었는데 그 난해함과 가격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고위층에서 '과시용'으로 엄청난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는 것을 보았다. 더욱 재밌는 것은 그 기사 댓글 중 (요즘은 기사보는 것보다 댓글보는게 더 재밌는..)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번역되었지만 심지어는 과시용으로도 찾는 사람이 없다는게 더 슬프다 라는 말이 있었다는 것이다. 나도 겉으로는 James Joyce를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정작 내 돈주고 산 그의 책은 세권밖에 없고 '어차피 사봤자 이해도 안되고 끝까지 읽지도 못할텐데'라는 생각에 살 생각조차 안하니 안그래도 문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외면당할 것이다. 거기다가 얼마전 또 이슈가 되었던 스타강사 김미경의 인문학 비하사건까지.. 왜이렇게 문학이 이곳 저곳에서 푸대접을 받는지 안타깝다. 나라도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써야겠다... 

이제 Stephen Hero는 여기에서 멈추고 그렇게 읽어보고 싶었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시작해야겠다. 그리고 곧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감상문을 들고 찾아오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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