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읽기

마담 보바리 by Gustave Flaubert_책과 영화

therealisticidealist 2019. 2. 10.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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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내가 그런 작품들만 골라서 보는건지, 최근에 읽은 소설 또는 영화 속의 여주인공들 대부분은 내재되어 있는 꿈과 욕망 또는 사랑을 갈망하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결론이 많았다. 연속으로 그런 내용을 접하다보니 한동안 나조차 그 트라우마에 시달릴 정도였다. 마담 보바리 역시 그다지 유쾌한 소설은 아니라는걸 미리 말해둔다. 





소설은 처음 샤를 보바리Charles Bovary의 어린시절을 묘사하며 시작한다. 목소리가 너무 작아 친구들 앞에서 말도 제대로 못하고 놀림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룰을 어기지 않고 모범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그의 뒤에는 그를 그렇게 키우고 만든 그의 엄마가 있다. 플로베르는 계속해서 샤를과 그의 부모의 관계, 또 그가 의사 시험에 떨어지고 다시 시험을 치르는 등 학창시절의 사소한 일화부터 그가 못생기고 교양없는 여자와 결혼을 하고 그 여자가 사별 후 다시 싱글이 된 그의 삶을 세세히 묘사한다. 

주인공은 샤를의 부인 마담 보바리인데 왜 그녀는 등장하지 않고 그녀의 남편인 샤를의 삶이 소설의 첫 부분을 장식할까? 그 이유는 바로 마담 보바리가 샤를을 만남으로 그녀의 인생이 송두리째 변하기 때문이다. 남들이 모두 부러워할 만한 의사의 아내. 도대체 그녀는 뭐가 그렇게도 불행했던 것일까?



Madame Bovary 1949 영화 포스터_google



엠마Emma(마담 보바리의 이름)는 아버지와 둘이 풍족하진 않지만 단란하게 지내던 천진난만하던 소녀였다. 아버지를 진찰하러 온 샤를이 그녀를 사랑하게 되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엠마는 그게 사랑이라 느끼고 또 자신이 가장 믿고 의지하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덥썩 그와 결혼을 하게 된다. 그리고 누구나 예상하듯 꿈많던 소녀는 지루하고 나이 많은 남편에게 곧 싫증을 느끼고 결혼 생활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다. 남편과 함께 파티에 다녀온 이후로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그리워하며 화려한 생활을 꿈꾸고 공상 속에 하루하루를 보낸다. 샤를은 그녀의 이런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럴수록 엠마는 점점 더 그를 혐오하게 된다. 



남편을 기만하고 본인의 욕망을 좇아 결국은 비참한 최후를 맞는 엠마를 보며 사람들은 뿌린대로 거둔다며 통쾌해 할 수도 있고 '배가 불러 그런다'며 그녀의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행동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심지어는 나조차 엠마가 하는 행동들을 보면서 샤를이 불쌍하고 그녀의 철없고 결과를 생각하지 않는 행동에 화가날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엠마는 자기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삶 속에서 이용당하고 버림받는 힘없고 나약한 존재이다. 남자들은 그녀의 아름답고 젊은 외모에 반해 그녀를 한 두번 가지고 놀다 떠나려는 수작으로 그녀에게 접근하고 샤를을 제외하고 누구하나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 그리고 그 샤를 마저도 그의 답답하고 소심한 성격으로 처음에는 정조를 지키고 어떻게든 다시 결혼생활에 집중해보려는 엠마를 더욱 더 그에게 질리도록 만들어 그녀가 집이 아닌 바깥 세상에서 즐거움을 찾도록 만든다. 남자들이 이 여자를 그렇게 만들었다. 라고 책임전가를 하는 것이 아니고 또 불륜을 미화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사람이 처한 환경과 주변인들에 의해 한 사람의 인생이 철저히 뒤바뀔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샤를이 자신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엠마를 부인으로 선택한 것부터가 잘못된 시작이었고 또 자신을 절제하지 못하고 남자들의 꾀임에 넘어가 그들의 사랑을 탈출구로 삼으려 것도 엠마의 잘못이다. 그리고 그 둘을 그렇게 만든 가정적 사회적 배경도 한 몫을 한다. 이런 모든 요소들이 하나로 합쳐져 한 평범한 소녀가 속물적이고 세속적인 사람으로 변하고 그런 그녀로 인해 그 남편의 인생까지도 아픔으로 얼룩진다.  





어떤 소설을 읽은 후 꼭 하는 것은 바로 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있는지 찾아보고 시청하는 것. 유명한 고전소설들은 대부분 영화로 나중에 리메이크 되어있으므로 소설을 다 읽고난 후 영화도 같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여기에서 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를 나중에 보라고 하는 것은 영화를 미리 보고 소설을 읽으면 글을 읽는 동안 이미 자신이 다 눈으로 보았던 내용을 보게 되므로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글을 읽으며 '이 사람은 어떻게 생겼을까?' '이 동네는 어떤 동네일까?' 라고 혼자 그림을 그리고 상상을 하면서 보다가 그 상상력이 시각적으로 표현된 영화로 다시 보게될 때 느끼는 그 재미는 소설이나 영화 둘 중에 하나만 봤을 때보다 훨씬 크다. 마담 보바리 역시 영화로 여러번 만들어졌는데 나는 1991년 작을 선택했다. 



최고의 영화 포스터!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원작이 프랑스 소설이고 이자벨 위페르가 마담 보바리를 연기했기 때문이다. 책 속에서 지나치거나 이해하지 못했던 마담 보바리의 혼란스러운 감정과 생각이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 너무 과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심심하지도 않은 연기로 플로베르가 표현하고자 했던 마담 보바리를 정확하게 그려냈다고 생각한다. 괜히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는 것이 아니다...





특히 영화의 후반부에서 엠마가 침대에 누워 고통스러워 하는 장면은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을 정도로 인상적이다. 


계속해서 마담 보바리라는 명칭대신 '엠마'라는 결혼 전 이름을 사용한 이유는 바로 소설의 제목으로도 쓰인 '마담 보바리'라는 명칭은 그녀를 다른 존재로 만들어 버리는 제 2의 신분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명칭은 결혼을 한 부녀자들에게 주어지는 당연하고도 평범한 것이지만 엠마라는 본인의 이름을 잃어버리고 '마담 보바리'라는, 누군가의 아내로만 칭해지는 그녀의 잃어버린 삶이 그 이름을 통해 드러난다. 이 마담 보바리의 엠마라는 원래 이름은 공교롭게도 이태리 영화 <I Am Love>에서 틸다 스윈튼이 남편에게서 새로 받은 '가짜' 이름과 동일하다. 극 중 틸다 스윈튼이 자신의 진짜 이름이 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무심하게 말하는 장면이 있다. 그렇게 여자들은 결혼을 하면서 새로운 이름과 함께 누군가의 아내, 아이들의 어머니로써 새로운 삶이 시작되고 또 자신만의 삶은 원래 이름과 함께 사라져간다.    




2015년 미아 와시코브스카 주연작. 미아 와시코브스카는 제인 에어에서도 그렇고 나긋나긋한 연기가 좋다. 



모든 의상이 참 화려하고 예쁘면서도 불길한 기운이 감돈다. 특히 주홍색은 항상 불길함을 상징한다는 것...



에즈라 밀러였다니. 당시에는 유명하지 않아서 이제 알아봤다. 



여성의 내재된 욕망과 해방에 대해 다룬 <마담 보바리>는 지금 시대에는 뻔하고 흔한 스토리일 수 있다. 하지만 플로베르가 살던 1800년대 프랑스 사회에서 불륜이나 여성의 욕망에 대한 소재는 굉장히 자극적이면서도 민감한 소재였고 쉽게 다루기에는 어려운 주제였다. 하지만 그는 과감하게 그 이야기를 수면위로 끌어 올렸고 1800년대 프랑스 사회의 적나라한 모습과 여성의 갈망을 있는 그대로 묘사했다. 그런 과감한 시도가 이 소설을 더욱 더 빛나게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2013년에 써놓은 글, 수정 및 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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