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보기

동화같은 영국 바스 Bath 여행 I

therealisticidealist 2019. 2. 1.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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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딩턴에서 바스까지 한 번에 가는 기차가 있어서 아침 일찍 기차를 탔다. 가격은 1인당 35파운드 정도 였던 것 같은데... 시간은 한시간 반.. 두시간 걸렸으려나..? 벌써부터 이렇게 모든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니. 



영국에서 런던이 아닌 다른 도시에 와본 게 너무 오랜만이라 조금 어색했다. 바스는 런던과 반대되는, 고요하고 차분한 도시이다. 소정언니 형부가 역까지 픽업하러 와주셨다. 너무나 감사한 소정언니 부부 :D



우리가 머물 소정언니네 집. 런던에서 이런 집에 정말 살아보고 싶었는데 짧은 기간이나마 이런 정통 영국 주택에서 머물게 되어 기뻤다. 런던에서 한국인 유학생으로 이런 집에 사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이유는 이렇게 고풍스럽고 조용한 지역에 있는 집들은 신원이 보장되지 않는 유학생들에게 절대 렌트를 안해주기 때문이다. 단, 예외가 있는데 월세를 1년치나 2년치를 한 번에 내면 가능하다. 하지만 파티를 자주 하거나 집을 엉망으로 쓴 후 먹튀하고 고국으로 돌아가는 유학생들이 많아 이 역시 받아들이지 않고 신원과 경제력이 확실하게 검증된 직장인들과 거래를 하는 집주인들이 대부분이다. 

바스는 런던과 달리 거의 모든 집이 다 이런 주택이다. 언니의 집 내부는 내가 예상한대로 우리나라 집들과는 비교도 안되는 높은 천장에 큰 격자창이 있는, 카페트가 깔린 전형적인 영국드라마에 나오는 집이었다.



첫날 소정언니와 형부가 차려준 저녁 식사!!!!!!

런던에서 3일 동안 빵을 주식으로 먹어서 속이 많이 안좋은 상태였는데 해물치즈떡볶이와 김밥, 북엇국, 과일까지.... 배부르게 잘 먹고 잘 씻고 따뜻한 잠자리에 누우니 머리를 대자마자 뻗어버렸다. 



다음 날 아침 창밖 풍경. 이런 뷰와 새소리에 매일 아침 잠에서 깨는 삶은 과연 어떨까.  



하염없이 창밖만 바라보고 있게 되는 정말 꿈만 같은 풍경이다. 



언니 부부가 추천해준 바스에서 가장 맛있는 브런치 카페라던 The Green Bird Cafe에 갔다. 오픈하자마자 갔는데 손님들이 끝없이 들어오더니 모든 테이블이 금새 꽉 차버렸다. 모두 아침식사를 하러 온 손님들이었는데 관광객은 거의 없고 동네 주민들이었다. 카페 종업원들과 손님들이 대화하는걸 들어보니 거의 매일 아침을 여기서 먹는듯했다. 그 말은 그만큼 브런치가 맛있다는 뜻. 커피와 핫초콜릿, 당근케익 역시 매우 맛있었다. 안쪽으로 공간이 더 있고 카페 문 앞에도 테이블이 있고 뒤쪽엔 가든도 있다고 했는데 날이 너무 추워서 나가진 못했다. 현지인들이 자주 가는 카페를 경험해보고 싶다면 정말 가볼만한 곳이다. 



다시 와서 먹어 본 브런치. 계속 말하지만 영국인들 참 부럽다. 우리에겐 아주 특별한 것이 이들에겐 일상이라는 사실.



바스의 작은 번화가. '작은' 번화가인 이유는 더 걸어가면 진짜 번화가가 있기 때문이다. 웬만한 브랜드는 모두 있고 쇼핑하러 온 사람들로 바글바글하다. 이 작은 번화가에는 소소한 소품샵이나 서점, 카페 등이 있다.



귀여운 세탁방.



이 작은 번화가 골목 끝자락에 있던 작은 책방. 여기에서 너무나 멋있는 핸드메이드 킹제임스성경을 발견했는데 우리나라 돈으로 10만원 정도였다. 주인 할아버지가 혹시 학생이냐고 물어보길래 아니라고 했더니 "No, your answer is always yes! then, I can give you a 10% discount."(항상 학생이라고 해야지! 그래야 내가 10프로 할인을 해줄텐데)라며 바스에서는 물건을 살 때 항상 학생이라고 하라고 했다. (물론 학생증을 검사하기 때문에 그런 거짓말을 하면 안되지만) 

영국에서는 바스 뿐 아니라 런던이나 다른 도시에서도 학생이면 최소 10%에서 많게는 20%까지 할인을 받을 수 있다. 거의 모든 품목을 할인받을 수 있기 때문에 영국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무조건 계산하기 전 학생증을 내밀어야 한다.




다음 날은 차를 타고 두 시간 정도를 달려 바스 근처 지역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관광지인 Waddesdon Manor 갔다. 




영국에서는 조금만 도시를 벗어나도 바로 이런 풍경이 보인다. 이상하게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영국의 자연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은데 아마 그 손질되지 않은 투박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나라의 자연이 아름답다면 영국의 자연은 '위대하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가즈오 이시구로의 표현을 빌려...)



멀리서 보이는 이 광경을 정말 믿을 수가 없었다. 

사실 이렇게 날이 개기까지 갑자기 비바람이 몰아쳐서 정말 많이 고생했다. 스케일이 이렇게 클 줄 몰랐는데 주차장은 차를 수천대는 세울 수 있을 것 같은 크기였고 주차장에서 5분 정도 걸어 매표소, 매표소에서 다시 5분 정도를 걸어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할 정도로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뒤쪽 정원. 역시 영국 하늘은 비 갠 후가 가장 아름답다. 



이 새장을 보며(그렇다. 메인 건물이 아닌 새장이다) 참 많은 생각에 잠겼다. '새들이 사람보다 좋은 집에 살 수 있구나'라는. 패리스 힐튼의 개집을 보고 온 느낌이랄까.



공사중이라 내부 대부분을 막아놔서 그렇게 많은 방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먼 길을 고생하며 온 것을 후회하지 않을 정도의 눈요기가 있었다. 11월 초밖에 안되었지만 벌써부터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휘황찬란하다. 



이 집(성이라고해야 더 어울릴듯)은 재산을 측정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막대한 부를 가진 유대계 로스차일드 가문 소유로 앨리스 로스차일드가 이어받기 전 그녀의 오빠가 정말 단지 사람들에게 부를 과시하기 위해 만든 곳이라고 형부가 말해주셨다.  



붉은 색으로 뒤덮인 인테리어가 초상화들 뒤에 어떤 미스테리가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연인 관계였다는 루머가 있는 로버트 더들리 경과 엘리자베스 1세 ... 나머지 둘은 누구일까. 우리끼리 '잘못하면 우리나라 고급 룸싸롱처럼 보일 수 있겠다'고 속닥대며 좋아했다...

사진은 못 찍었지만 제일 기억에 남는 곳은 지하에 있는 와인 셀러였다. 수백년된 와인들이 끝도 없이 쌓여있던.... 대학생 때 읽었던 와인 셀러에서 일어나는 살인 사건을 다룬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 <The Cask of Amontillado(아몬틸라도의 술병)>이 자꾸만 생각나서 솔직히 조금 무서웠다. 




그리고 드디어.... 드디어.... 그렇게 그립던 피쉬앤칩스를 먹었다. 누가 영국 음식이 맛없다고 했는가! 피쉬앤칩스가 있는데. 소정언니 부부가 바스에서 제일 맛있다며 강력추천한 이 레스토랑은 런던에서 먹으러 기차타고 가도 될 정도의 퀄리티다. 내가 살면서 먹어본 피쉬앤칩스 중에 정말 제일 맛있다. 

그렇게 피쉬앤칩스로 행복하게 하루를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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