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읽기

좋았던 날들의 독서 기록.

therealisticidealist 2020. 4. 4.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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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바다 앞에서 책을 읽을 수 있다면!

책 한 번 읽고, 바다 한 번 보고, 커피 한 모금 마시고.

내가 너무 존경하는 진리 침례교회의 김영균 목사님께서 보내주신 책 <가만히 위로하는 마음으로>.

위로가 정말 필요했을 그 때, 생일을 맞아 방문했던 양양 죽도해변에서 따뜻하게 위로 받은 날.

 

산다는 것은 상처받는 일입니다. 우리는 유한한 존재들이며 모두 상처 입은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나는 이미 깨어진 존재라는 것, 그리고 앞으로 얼마든지 깨어질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로맹 가리의 <이 경계를 지나면 당신의 승차권은 유효하지 않다>.

중고책이라 표지 상태가 좋지 않다. 하지만 어떤 촬영 때문에 방문했던 카누장 배경이 한 몫 크게 한다. 

로맹 가리는 각 작품들 안에서 가면을 쓰고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 

사실 책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 때의 분위기와 온도, 냄새가 기억난다. 

바람 부는 날, 소양강과 흔들리는 카누를 앞에 두고 중년 남성의 솔직하고 적나라한 고뇌를 읽었다. 

 

난 그 전에 죽고 싶어. 바다가 오염되기 전에, 삶이 제 아름다운 깃털을 잃기 전에, 모든 장미가 회색이 되기 전에.

 

 

 

 

 

역시 물가에서 읽는 책은 맛이 다르다. 

작년 홍콩 필름아트 페스티벌에 통역 차 출장갔을 때, 일정이 끝나고 컨벤션 센터 앞 강가에서 잠시 독서.

윌리엄 골딩의 <Lord of the Flies(파리 대왕)>.

고립된 공간, 어른 없는 세상의 아이들이 주는 순수한 공포.

 

Ralph wept for the end of innocence, the darkness of man's heart, and the fall through the air of the true.

 

 

 

 

 

여긴 세종문화회관 측면에서 마주보는 KFC 2층. 생각보다 집중이 잘 되는 공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광화문 전망이기 때문에 기분까지 좋아진다. 

당대 최고의 지식인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앞에선 한 없이 어린 아이가 된다.

햄버거와 눈물을 머금고 읽었던 C.S. 루이스의 <헤아려 본 슬픔>. 

 

눈물로 눈이 흐려져 있을 때는 어느 것도 똑똑히 보지 못한다.

 

 

 

 

또 광화문!(광화문 최고!)

콘코디언 빌딩에 있는 포비 브라이트에서 유명한 플랫 화이트를 마시며 독서.

여름에 예정되어 있던 그리스 아테네에서의 공연이 코로나로 취소되어 대리 만족으로 구입한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아테네가 아닌 크레타에 가고 싶어졌다. 

나는 조르바가 부러운 것일까 카잔자키스가 부러운 것일까.

 

나는 소박하고 절제된 것들이 얼마나 큰 행복감을 가져다주는지 다시 한 번 느꼈다. 포도주 한 잔, 밤 한 톨, 초라한 오두막집, 바닷소리, 이것들이면 됐다. 그 밖에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 이 모든 것이 바로 행복이라는 것을 느끼기 위해서는 가난한 마음과 절제만이 필요할 뿐이다."

 

 

 

 

 

또 광화문! 광화문이라기보다는 시청에 조금 더 가깝지만..

조선일보 미술관 바로 앞에 있는 유명한 카페인데 카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일부러 테라스에 앉았음에도 사람이 너무 많고 음악이 굉장히 시끄러워 책에 집중할 수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행복을 정복할 방법을 일러주는 버트런드 러셀의 <The Conquest of Happiness(행복의 정복)>.

하지만 나는 이 책을 다 읽고도 행복을 정복하지 못했다. 

 

Now, every kind of fear grows worse by not being looked at.

 

 

 

 

 

여긴 어디일까. 잘 기억나지 않는다. 판교 아니면 구리의 한 카페일 것이다.

스토리보다는 쥘 베른의 박학다식함에 손을 뗄 수 없게 만드는 <Twenty Thousand Leagues Under the Seas(해저 2만리)>.

도대체 컴퓨터도 스마트폰도 없던 150년 전, 어떻게 이런 작품을 쓸 수 있는 것인가!

한 권을 다 읽고 나면 지구상의 모든 바다를 여행할 수 있다. 

 

We were breathing, really breathing!

 

 

 

 

경기도 광주 오포에 있는 한국커피.

<자연>이라는 책 제목과 너무 잘 어울리는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기에 얼른 한 장 찍었다.

초록빛이 주는 싱그러움과 따뜻함, 시원함과 신비로움.

랄프 왈도 에머슨이 자연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 했던 것들, 몰랐지만 알아야할 것들에 대해 말해준다. 

 

하늘은 그 가치를 못 느끼는 사람들에게 드리울 때는 장대함이 줄어든다.

 

 

 

 

 

판교에 있는 카페 '커피 부케(또는 '부케 커피'였다)' 테라스.

테라스는 마치 런던에 있는 카페에 온듯 꽃과 나무가 어우러져 매우 만족스럽지만 내부로 들어가면 역시 시끄러운 음악과 애매한 인테리어가 눈과 마음을 혼잡하게 한다.

내가 너무너무 사랑하는 미우라 아야코의 <양치는 언덕> 조금 더 현대적인 번역으로 다시 읽기.

한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은 곧 그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

 

인간이란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야. 신이 아니거든. 같은 지붕 밑에서 산다는 건 서로 용서하며 산다는 것을 뜻한다.

 

 

 

 

 

돈 안벌고 책만 읽고 살 수 있다면.

돈 안벌고 책만 읽어도 사고 싶은 책을 다 살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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