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꿈을 아주, 아주 많이 꾼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 결코 평범하지 않은 내 상상력이 투사된 꿈, 또는 블록버스터를 방불케하는 규모와 달리의 그림에나 나올 법한 초현실적인 꿈을 꾼다. 한동안은 바다에 관한 꿈을 연속으로 꿨는데 항상 바다 안에 집, 자동차, 작은 보트 등이 가득 차 떠다니는 모습이었다. 어떤 날에는 보트 안에서 창문으로 넘실대는 파도를 보며 떨기도 하고 어떤 날엔 바닷 속에서 자동차 사이들을 헤엄쳐 다니기도 하고 어떤 날엔 평온한 바닷가 해변 모래사장에서 그 풍경을 바라보기도 한다. 바다의 색은 항상 다르다.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푸른색을 띄거나 무자비한 초록빛, 또는 8,90년대 미국영화에서 자주 보이는 따뜻한 노랑 빛을 띄고 있기도 하다.
왜, 나는 바다가 나오는 꿈을 이리도 자주 꿨을까. 바다를 자주 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바다를 항상 생각하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도 바다는 매일 밤 날 찾아왔다.
긴 공복 후 중국음식을 먹고 체했던 어젯 밤에는 내 뱃 속안 내장들이 모두 풀려 배 안에서 헐겁게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는 꿈을 꾸었다. 분명 내가 아는 대장의 모습은 꼬불꼬불 라면처럼 되어 엉켜있는데 내 뱃속에서는 일자로 쭉 펴져 있었다. 그렇게 둥둥 움직이던 내장들은 내 척추까지 건드려 허리에도 통증을 느끼게 해 자다가도 몇 번이나 잠에서 깼다. 며칠 전 갑자기 허리가 아팠던 일과 연관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 꿈은 현실의 경험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꿈과 현실의 경계가 허물어진 형태로 나타났다.
이렇듯 매일 반복되는 현실적/비현실적/초현실적 꿈은 나를 꿈이라는 저 너머의 세계를 훔쳐보고 싶게 만들었다.
꿈에 홀린 사람들이라면 꼭 읽어봐야할 책. 프란츠 카프카의 <꿈>
합정에 있는 카페이자 서점인 <1984>에서 표지에 반해 내용도 확인하지 않고 산, 카프카가 편지나 일기 등에 기록한 자신이 꾼 꿈들을 발췌해 모은 책이다. 꿈을 있는 그대로 묘사해 놓았기 때문에 평소에 별로 독특한 꿈을 꾸지 않는 이들에게는 매우 난해하게 보일 수 있다. 이해가 전혀 되지 않는 이상한 꿈들이 많이 적혀 있다. 하지만 꿈을 이해할 수 있다면 더 이상 꿈이 아니게 된다.
이 책은, 꿈들에 홀린 자들이 잠 없는 밤 벌인 투쟁을 담고 있다. (p9)
이 한 문장이 이 책의 전체 맥락을 관통한다. '꿈들에 홀린 자들이 잠 없는 밤 벌인 투쟁'이라니. 심한 불면증을 겪을 때에 그저 잠이 안오는 것이라고만 단정했지만 돌이켜보니 꿈에 홀린 게 맞다. 꿈에 홀려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내동댕이 쳐지며 깨어나길 원하지만 그럼에도 꿈을 거부할 수 없기에 매일 밤 끌려다닌다.
두 달정도 극심한 불면증에 시달린 적이 있다. 다음날 오전 6시에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12시 전에 자리에 눕는다. 그리고 오전 6시까지 너무나 선명한 정신으로 멍하니 누워있다가 하루를 시작한다. 눈꺼풀을 닫고 있는게 더 힘이 들어 어떤 날은 그냥 눈을 뜨고 있기도 한다. 그리고 중간에 낮잠을 두 시간정도 자는데 이 때는 또 꿈의 공격이 시작되기 때문에 일어나면 더 피곤하고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두 달정도 그렇게 생활하다보니 안그래도 예민한 성격이 더 예민해지고 모든 의욕이 사라졌다. 사람들 틈에 껴 있는 것도 힘들어 점점 더 혼자 있는 시간에 집착했고 오늘도 또 못잘 수도 있다는 압박감에 저녁부터 불안해했다. 하루 전체를 어떻게 하면 오늘은 잠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시간을 보냈고 잠자리에서 눈을 감자마자 형광등이 켜지듯 살아나는 정신 때문에 이불을 걷어차고 울기도 하고 폭력적으로 변했다.
이 부분을 읽으며 약 100년 전 나와 완벽하게 일치하는 경험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에 반가웠다. 카프카는 평생 심각한 불면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꿈을 꿨다면 분명 잠을 잔 것인데 왜 불면증이냐며 반문할 수 있다. 그에 대해 카프카는 "형식적으로야 내 육신과 나란히 누워서 잠을 자는 것이긴 하지만, 그러나 사실은 그동안 꿈으로 나 자신을 쉴 새 없이 두들겨대야만 하는 것이다"라고 답한다.
이후 카프카가 꾼 기이하고 자세한 꿈들이 나열된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대체 이런 이상한 꿈을 왜 꾸고 이걸 왜 기록해놓는지 의아해 할 수도 있는데 어쩌면 우리 모두 이런 꿈을 꾸고 있지만 단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문 뒤에는 아주 가파른 벽이 허공으로 치솟아 있었다. 아버지는 거의 춤추는 것 같은 걸음걸이로 그 벽을 올라갔다 ... 나는 네 발로 간신히 기어서, 죽을 힘을 다해 올라갔지만, 자꾸만 뒤로 미끄러지곤 했다. 벽은 내 발 아래에서 더욱더 가파르게 변하는 것만 같았다. (p52)
이런 류의 꿈은 많은 이들이 경험했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이런 꿈을 10대 때 많이 꿨는데 그 배경은 내가 아주 어린 시절 다니던 교회의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가파른 길인 것 같다. 눈이 오면 미끄러워서 내려갈 수가 없었기에 밧줄을 타고 오르내렸고 장난기많은 우리는 쌀 포대, 타이어, 고무대야 등을 타고 주차장 바닥까지 빠른 속도로 내려가곤 했다. 한 번은 가속이 붙어 겉잡을 수 없는 속도로 내려가다가 주차장 벽에 세게 몸을 부딪혔다. 그 벽에 부딪히는 일이 워낙 자주 있었으므로 앞에 임시로 대강 충격흡수장치를 설치해 놓았지만 그 고통이 매우 컸다. 가파른 오르막/내리막 길에 대한 공포가 이 때 생긴 것 같은데 이후 내 꿈에 단골처럼 등장했다. 나를 제외한 다른 모든 이들은 수월하게 올라가지만 나 혼자만 안간힘을 써도 계속 그 자리에 머물렀다. 손으로 붙잡을 곳이 없어 손가락 끝, 거의 손톱을 이용해 벽에 매달려 있어야 했다. 이 꿈에서 내가 오르막을 다 올라 그 뒤에 뭐가 있는지 본 적이 있었을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중에 그 꿈이 다시 나타나면 꼭 그 오르막을 정복해보고 싶다. 그래서 무엇을 위해 내가 그렇게 아등바등했는지 내 눈으로 직접 보고싶다. 이제는 내가 정말 이 꿈을 꾼건지 아니면 어딘가에서 읽은 건지 조차 구분이 안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잠이 아니었으니, 그 깨어남 또한 진짜 깨어남이 아니었습니다. (p98)
꿈 꾸는 것을 넘어 그 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한창 바다에 관한 꿈을 내리 꿨을 때 정말 이유가 궁금해서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인터넷으로 검색도 해봤다. 하지만 ‘바다가 나오는 꿈’을 검색해보면 대부분 사주풀이마냥 미신적으로 풀어놓은 해석들이어서 내가 찾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다 문득 프로이트가 자신의 저서 중 가장 중요한 저술로 여긴다는 ‘꿈의 해석’ 이 생각났다. 정신분석가였던 프로이트는 이 책에서 꿈이라는 추상적인 대상을 이론적으로 치밀하게 분석한다. 환자들의 꿈을 해석함으로 그들이 겪고 있는 정신질환의 원인을 찾아 치료하는 방법을 시도했다.
이 책의 대부분은 프로이트의 환자들이 꾼 꿈과 그를 분석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내가 관심있던 부분은 오로지 '꿈의 다양한 속성'에 관한 내용이다.
꿈의 특성 중 하나인 꿈의 망각에 대해 프로이트는 "꿈을 기억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오류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꿈에서 깨어난 즉시 종이에 기록하는 방법 뿐이다 ... 부분을 보완하기 시작하면 상상에 의지하기 쉽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창조적 예술가가 된다. 그래서 이야기를 되풀이하다보면 스스로도 자신의 이야기를 믿게 된다"라고 말한다. 더 창조적이고 더 예술적인 사람일수록 꿈을 더 많이 꾸고 더 잘 기억한다는 인식이 이런 부분에서 비롯되는 듯하다. 그 꿈이 실제 존재했는지 얼마나 정확한지는 누구도 알지 못하지만 보완하고 수정해 자신만의 이야기로 만들 정도의 민감함은 그를 창조적 예술가로 만든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원하지 않는 꿈을 꿀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소망이 있어 스스로를 억압한다. 이 억압 의도가 꿈을 왜곡시키고 소망 충족을 은폐하도록 한다. 이 억압 의도가 검열 행위를 낳는 근원이기도 하다. 종합하면, 꿈은 억압하고 억제된 소망의 위장된 충족이라고 말할 수 있다. (p107)
'억압하고 억제된 소망의 위장된 충족'. 그렇다! 이것이 바로 내가 찾던 해석이다. 모든 꿈을 다 이렇게 해석할 순 없지만 그토록 궁금하던 바다에 관한 꿈은 소망의 위장된 충족이다. 난 항상 입버릇처럼 바다보다는 산이 좋다고 말하지만 무의식적으로 물에 이끌리는 경향이 있다. 물을 향한 공포심이 큰 만큼 물을 향한 동경심도 크다. 아직도 처음 말레이시아 티오만 섬에서 스노클링을 했을 때 느꼈던 공포심은 잊을 수가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 속에서 나가긴 싫었다. 수영장에 들어갈 때마다 물 속에 무언가가 있을 것같다는 불안함이 항상 있지만 심해에 관한 다큐멘터리는 찾아 본다. 이런 나의 모순된 소망이 여러가지 과정을 거쳐 그렇게 지겹게도 나타났나 보다.
프로이트는 이 책에서 꿈을 다양한 방면으로 해석하지만 프로이트답게 대부분의 꿈을 성적인 욕망 또는 성적인 상징으로 해석한다. 이 부분은 일부 동의하면서 또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꿈에서 층계를 오르내리는 행위는 대부분 성교를 상징한다'라고 했는데 나는 어릴 때 계단을 계속해서 올라가지만 아래로 다시 떨어지고 또 떨어져 결국 계단을 끝까지 오르지 못하는 꿈을 아주 많이 꿨다. 이는 앞서 나온 소망 충족과 관련이 있다고 해석한다. 내가 원하는 지점과 목표가 있지만 그에 도달하지 못하는 내 모습이 꿈에 투사된 것이다. 물론 꿈이기 때문에 100프로 다 같은 해석을 들이댈 순 없기에 그의 해석은 대부분의 경우 맞다고 생각한다.
아래는 가장 기억에 남았던 프로이트가 말했거나 인용한 꿈의 속성들이다.
"완벽하게 합리적인 꿈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꿈은 비이성적인데다 부조리하기 짝이 없다."
"꿈은 이성적 의지의 감시와 주의력에서 벗어나 마치 만화경처럼 모든 것을 뒤섞어 버린다."
"깊이 잠들지 않는 두뇌의 유희는 잠이 깰 때까지 계속 된다."
"우리의 꿈은 부단히 이어지는 개성들을 보존하는 수단이다. 꿈 속에서 우리는 사물들에 대한 인상이나 그 옛날 우리를 지배했던 충동과 활동으로 되돌아간다."
"깨어 있는 동안 의식에 침입해 숨어 있던 기억들도 꿈속에 나타나 자신들이 아직 정신 안에 존재하나는 것을 알리곤 한다."
프로이트가 카프카의 꿈을 분석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이 1900년에 출간 되었고 카프카는 1883년부터 1924년까지 살았으니 둘은 동시대에 활동했다! 카프카가 한 없이 꿈을 꾸는 동안 프로이트는 다른 이들의 꿈을 분석하고 있었다. 프로이트는 카프카를 '강박 신경증이나 환각성 정신이상으로 판명했을까 아니면 그의 지성과 문학적 재능을 찬탄했을까'(루이스 vs 프로이트 인용).
Le Sommeil(Sleep) by Salvador Da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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