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읽기

철학으로 현대음악 읽기 by 박영욱

therealisticidealist 2019. 2. 13. 22:50
반응형


가끔 제목만 보고 저자나 내용도 확인하지 않은 채 책을 사는 경우가 있다. 이 책이 그 중 하나인데 인터넷으로 우연히 표지만 본 후 바로 서점에 가서 구입했다. 그리고 내용에 아주 만족해 정독하는 중이다. 


이 책은 '바흐', '리게티', '쇤베르크', '베베른', '불레즈', '스티브 라이히' 등 그 이름만으로도 음악 역사의 큼지막한 칸을 채울 수 있는 작곡가들의 작품들을 분석하는 것을 뼈대로, 제목에서 직접적으로 말하듯 철학을 이용한다.

가끔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브라이언 이노나 스티브 라이히 등의 음악을 들려주는데 감상을 물었을 때 제일 많이 나오는 대답이 '무서워요'이다. 처음엔 이 대답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대체 왜 이 음악이 무섭게 들리는걸까. 왜 무섭냐고 했더니 특정한 멜로디없이 웅웅거리는 소리만 나거나 똑같은 패턴이 계속 반복되어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그때까지도, 사실 얼마 전까지도 내가 재미있고 재치있고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음악이 누군가에게는 무섭게 들릴 수 있다는 사실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는데 평생 전혀 다른 음악을 듣고 자라온 환경과 교육으로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된다. 

무엇이든 처음 접하는것엔 거부감을 느끼게 마련이다. 또 다른 큰 이유는 그 뒤에 숨겨진 의미를 모르기 때문이다. 왜 똑같은 음들이 반복되는지, 왜 불협화음을 만드는지, 왜 악기를 이상하게 연주하는지. 이유를 모르는 이들 귀에서는 거부 반응이 먼저 일어나는게 당연하다. 나 역시 무턱대고 난해하기만한 음악은 질색이다. 아무리 예술이라지만 듣기에 거북한 소름끼치는 소리만 계속 내는 음악도 싫다. 하지만 분명한 이유와 철학이 있을 때에는 다르다. 몇년 전 아티스트 Annea Lockwood의 Glass Concert Proejct 공연 영상을 아주 흥미진진하게 본 적이 있다. 유리를 이용해 낼 수 있는 모든 소리를 다 보여주고 들려준다. 이런 음악(또는 노이즈)은 감상 목적으로는 듣지 않겠지만 그 목적이 분명할 때에는 목적이 성취되는 과정을 함께 즐기고 참여할 때 그 가치를 깨닫는다. 


 

위 이야기를 한 이유는 이 책에 관한 한겨레 기사 제목이 '현대음악의 난해함엔 이유가 있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현대음악의 난해함엔 이유가 있고 이유 없이 난해하기만한 음악은 취미 정도로 치부되어도 좋다. 



먼저 1장 '왜 바흐로부터 출발하는가? - 바흐의 무중력 그리고 리게티의 구름'에서는 바흐 음악의 무중력성에 대해 설명한다. 


"바흐의 음악에서 균형은 수학적이고 형식적인 완결성 자체로 목적이 아닌 절대적인 '무중력'의 상태에 다다르는 형식적 특징이다. 그것은 중력 혹은 외부의 다른 힘 때문에 일정한 방향으로 기울어지지 않는 절대적인 균형의 상태이다 ... 그렇기 때문에 절대적인 균형의 상태, 즉 무중력의 상태는 어떤 방향으로도 향할 수 있는 무한한 방향을 지닌 상태를 뜻한다. 이렇게 무한한 방향을 지닌 절대적인 균형의 상태야말로 완전한 신의 세계임에 틀림없다"(p34)

"바흐의 음악은 과거/현재/미래로의 흐름을 폐기하고 현재라는 동시성을 만들어내며, 시간의 흐름을 폐기하고 영원한 '현재'를 만들어낸다"(p36-37)


어릴 때 클래식을 공부하긴 했지만 바흐의 음악은 많이 들어보지 않아서 이 책을 읽으며 많은 부분을 배웠다. 하지만 역시 내가 바흐 음악에 코멘트를 달기엔 처절한 수준의 지식이기에 스킵한다. 바흐의 음악이 무중력으로 표현되었다면 리게티의 음악은 '뜬구름'이다. 여기에서는 과학철학자 칼 포퍼의 개념을 빌린 리게티의 <시계와 구름>Clouds and Clocks를 인용한다. 

"포퍼는 계산 가능하고 예측할 수 있는 것을 '시계'에 비유한 반면, 예측불가능한 것을 '구름'에 비유하였다 ... 둘은 서로 정반대의 특성을 지니며 서로 공존할 경우 모순적이다. 원래 모순의 상태란 공존할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하지만 리게티의 음악에서 둘은 공존한다."(p.66)

우리 귀에 아무 음이나 무작위로 때리는 것처럼 들리는 소리가 '구름', 그 소리를 만드는 측정되고 계량화된 형식이 '시계'이다.


                                                                                                                                   

리게티의 대표작 <대기(Atmosphere)>의 악보 일부다. 제목 그대로 '대기'를 나타냈는데 들을 때마다 전율을 주는 곡이다. 처음 이 곡을 들은 사람들은 역시 현대음악은 난해한 '그들만의' 리그라고 생각하며 이어폰을 빼버릴 것이다. 하지만 리게티가 이 곡을 통해 나타내고자 했던 철학을 알고 나면 내가 느낀 전율을 같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예측 불가능한 구름이라는 묘사가 딱 들어맞는다. 하지만 이 뜬구름을 표현하기 위해 계산 가능하고 예측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소요되었다. 악기 군이 응집해 나타내는 밀도 높은 소리의 무리를 들어야 한다. 그러면 리게티가 나타내고자 한 '대기'를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다. 

          "리게티의 음악의 치밀한 수학적 구성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그것은 조성과 화음의 중력을 거부한 무중력의 무한한 방향성에 대한 탐구에서 비롯된 결과물이다"(p.70)



2장 '새로운 음악'을 시작하다 - 쇤베르크의 음악과 현상학적 환원과 3장 전자음악의 탄생 - 쇤베르크의 한계를 넘어서에서는 쇤베르크를 분석한다.


          "조성 자체가 붕괴될 경우 음악은 아무런 규칙도 없게 될 것이다. 말하자면 이 경우 극단적으로는 아무런 규칙도 없이 마음대로 피아노 건반을 두들겨도 음악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이 부분이 소위 아방가르드 음악 또는 예술을 한다는 이들이 쉽게 걸려든 후 헤어나오지 못하는 유혹이자 함정이고 현대음악이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무작위로 두드리는 소음으로 들리는 이유이다. 마치 추상 현대미술을 보며 '나도 저렇게 그릴 수 있겠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그 안에 치밀하고 섬세한 규칙과 질서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테고 안다해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꽤 많다. 

쇤베르크의 음악을 들으면 충분히 이런 감상을 가질 수 있다. 아무 건반이나 마구 두들긴다는 느낌. 특정한 조가 없기 때문에 음들이 마구잡이로 무질서하게 엉켜있는 것 같이 들리기 때문이다. 2장을 읽고 쇤베르크가 '무조음악'이라는 표현을 매우 싫어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쇤베르크=무조음악'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그는 "조성음악 자체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조성이 음의 보편적 질서와 조화를 표현하는 보편적인 원칙이 될 수 없다는 사실로부터 보다 보편적인 조성의 원칙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p78)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독일 철학가 후설의 '현상학'이라는 철학개념을 쇤베르크의 음악에 비유하는데 '현상학'은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이미 주어진 것들이며 객관적으로 그러한 것이라고 믿는 일상적인 의식에 대한 거부"(p83)이다. 복잡하게 들릴 수 있지만 쉽게 말하면 자연스럽다고 여기는 것들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한 번 질문을 던져보라는 뜻이다. 음악이니까 화성이 있어야 하고 정해진 리듬과 박자가 있어야 한다는 자연스러운 생각. 쇤베르크는 본인의 음악을 통해 전통적인, 그래서 모두가 자연적이라고 믿는 조성음악을 거부하고 더 나아가 새로운 영역을 탐구했다. 



-------------

나머지 부분은 직접 읽어 보길 권유한다. (아직 나도 끝까지 못읽었기 때문..) 저자가 현대음악의 구조를 분석한 부분은 현대음악을 대학원에서 배운 나 조차도 가끔 따라가기 버거웠다. 음악전공하신 분이 아닐텐데 어떻게 그렇게 꼼꼼하게 분석할 수 있는지... 그래도 책은 재미있다. 매우 학구적이고 어려운데도 재미있다. 


서론에 '아방가르드 소아병'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레닌이 썼던 '좌익 소아병'을 빌려와 저자가 만든 이 표현에 대해 저자는 "기성의 모든 질서를 거부하고 파괴하는 것을 예술의 의미로 삼는 것은 그 행위가 정치적인 의식을 지니든 그저 유희를 위한 것이든 한갓 아방가르드 소아병에 지나지 않는다 ... 나는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 곧 예술이라고 보는 태도를 아방가르드 소아병이라고 부르고 싶다"(p7)라고 설명한다. 우리 모두가 한번쯤 중2병을 겪고 음악 좀 듣는다는 사람들이 '홍대병'에 걸리듯 예술하는 사람 중 아방가르드 소아병에 걸렸던/걸린 사람들의 수는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그런 이들의 작품이 대중들에게 더 접하기 쉬운 루트에 퍼져 있고 이는 많은 사람들이 훌륭한 현대음악가들을 그 비슷한 부류로 여겨 일단 거부해버리는 불편한 결과를 낳는다. 이 책을 읽고나면 그런 오해는 많이 풀릴 것이라 생각한다. 적어도 이 책에 소개 된 음악가들은 아방가르드 소아병으로 치부되는 수치는 면할 것이다. 나도 현대음악을 그렇게 깊이, 많이 듣는 편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더 많은 사람들이, 특히 음악하는 사람들이 현대음악을 무서워하지 않고 피하지 않고 소음이라 여기지 않고 한 번쯤은 다른 눈으로 바라보고 다른 귀로 들어봐줬으면 한다. 우리가 매일 길거리에서, 또 카페에서 듣는 차트에 올라와 있는 음악만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술가가 기존의 규범을 거부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파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엇인가를 만들기 위한 창작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과정의 일부다."(p7)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