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읽기

핑크 노이즈, Pink Noises Women in Electronic Music and Sound

therealisticidealist 2013. 1. 15.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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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nk Noises by Tara Rodgers는 24명의 여성 작곡가, DJ, 즉흥연주자 또는 아티스트 등의 인터뷰를 담은 책으로 남성들이 압도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전자음악 분야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페미니즘에 대한 이슈도 다루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처음 여성 일렉트로닉 뮤지션 신장을 위해 저자가 2000년 설립한 Pinknoises.com에서 부터 시작되었고 모듈러 신스를 직접 디자인, 제작하는 뮤지션부터 남자 DJ들만의 전유물이었던 뉴욕의 유명 클럽에 입성한 DJ, 필드 레코딩과 인스톨레이션, 리서치를 중점으로 하는 작곡가들까지 일렉트로닉 음악의 다방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주 어렸을때부터 부모님 또는 형제 자매의 영향으로 음악을 시작한 사람들, 자신이 음악을 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하다가 어떤 우연한 기회에 뮤지션으로 변신한 사람들, 클래식 음악을 하다가 이미 다 만들어진, 주어진 음악에 대해 싫증을 느껴 자신이 직접 뛰어든 사람들 등 여러가지 배경에서 온 사람들이 음악을 시작하게 된 배경, 현재 하고 있는 작업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 등을 풀어낸다.  

책 뒷면에 적혀 있는 DJ Spooky의 코멘트 같이 일렉트로닉 음악은 'Boys with Toys' 라는 인식이 깊게 자리 잡혀 있다. 나도 그동안 셀 수 없이 많이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등 기술적인 장벽에 막혀 낙심했었고 가끔 일렉트로닉 음악을 한다는 친구들(남자) 공연에 갔다가 그들의 엄청난 기술과 장비에 기죽은 적도 한 두번이 아니다. 이건 물론 내가 남녀를 불문하고 남들보다 Mathmatics에 아주 약하다는 점도 기인을 하지만 남자가 90%인 우리 과에서도 나를 포함한 여자 학생들은 대부분 싱어/송라이터 출신이고 남자들은 거의 DJ 아니면 엔지니어 출신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musician 이라기 보다는 mechanician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릴 법한 사람들이 많았고 기술적로는 매우 뛰어나지만 그다지 마음 속 깊이 감동은 주지 못하는 음악이 많았다. 그 사람들은 'music' 보다는 'sound'또는 'noise'를 더 추구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질투심 때문인지 열등감 때문인지 그 현란한 기술과 화려한 장비들이 그다지 곱게 보이진 않았다. 그럼에도 그 능수능란함을 부러워하는 마음은 어쩔 수 없다. 


pinknoises.com



책에서 DJ Mutamassik(이름만 보고 다들 남자라고 생각한다고 한다)의 인터뷰 중 그녀의 스튜디오 노트에서 발췌한 부분이 있다.

'jam w/ beats you love then erase them & leave your track that is within that feel...'

매우 추상적이기도 하지만 자기자신에게 나름대로 꽤 명확한 디렉션을 주고 있다. 나도 작업을 할 때 가끔은 기술적인 부분에서 꽉 막힐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도 저런 방식으로 느끼는대로 하곤 한다. 정해진 공식보다 일단은 내가 듣고 느끼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마치 작곡을 할 때 화성학에 정확하게 들어맞는 '완벽한' 곡을 쓰는 것보다 남들이 듣기엔틀린것 같이 들릴지 몰라도 내가 듣기에 그게 맞는 것 같으면 비화성이건 무조이건 그냥 쓰는거다.  물론 기술적, 기초적으로 부족한 부분은 보완하고 채워넣어야 하지만 그 테크닉이 곡을 쓸 때의 감정과 자유를 대신해 버리면 안되는 것과 같다.  


이 책에 소개된 작곡가 중 한 명을 소개하자면 뉴질랜드 출신의 Annea Lockwood를 소개하고 싶다. 아마 인터뷰가 실린 24명 중 가장 연륜이 깊고 유명한 사람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동안 다른 책에서도 여러번 그녀의 작품을 접해왔기에 이 곳에서도 소개하고 싶다. Annea Lockwood는 필드 레코딩과 인스톨레이션을 전문적으로 하는 작곡가이다. 유명한 작품들로는 'A Sound Map of the Danube(2005)', 'Piano Transplants: Piano Burning, Piano Drowning, Piano Garden, Southern Exposure(1967-2005)' 그리고 밑에 소개할 'Glass Concert(1967-70) 등이 있다. 



annealockwood.com


The Glass Concert* (1967-70)

live audio/visual performance with amplified glass
Score published in The Source Book: Music of the Avant Garde, 1966-1973,
eds. Larry Austin and Douglas Kahn,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9

Lockwood site-specific에 기초한 작곡도 많이 하는데 site-specific 이란 어떤 특정한 장소, 지역을 주제로 작품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가슴 아픈 역사를 가진 전쟁이 일어났던 강의 물 흐르는 소리와 그 주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녹음 한다던지 강의 상류부터 하류까지를 따라가며 어떠한 위치에서 나는 특정한 소리들로 Sound Map을 만들거나 하는 것이다. 그 중 앞서 말했던 'A Sound Map of Danube'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Pink Noise의 원래 의미는 화이트 노이즈에서 변형된 것으로 모든 주파수의 성분을 포함하고 있는 소음이라고 하는데 이 소음은 마치 나뭇잎이 바람에 스치는 듯한 소리를 내기 때문에 뇌파를 안정시키고 숙면을 유도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핑크색이 여성성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여성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감성과 따뜻함을 나타내기도 하는것 같다. 어떻게 보면 딱딱하고 기계적인 일렉트로닉 음악에 이러한 여성성을 불어넣는 것 또한 또 다른 움직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프로젝트, 책의 제목인 Pink Noises는 다른 어떤 이름보다도 더 완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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